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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술자가 엔지니어로 인정받을 조건 /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이름 관리자 이메일  bbanlee@kfcc.or.kr
작성일 2024-08-05 조회수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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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의 머릿속에는 ‘안전하게, 좋게, 빠르게, 싸게(safer, better, faster, cheaper)’라는 글로벌 스탠다드 원칙이 말뚝처럼 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각 항목은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을 희생시키는 관계가 아닙니다. 싸고 빠르게 하려고, 위험하게 일하거나 불량한 물건을 만들면 안 된다는 뜻이죠. 4개 항목이 모두 지켜져야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결론입니다. 이 원칙은 건설 분야만이 아니라 모든 경제활동의 기본 전제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경쟁을 통해 이 원칙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공정성(fairness)이라는 또 하나의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어디 적혀 있든 아니든, 건전한 거래 상대끼리 지켜야 할 약속이기에 시장의 생명줄 같은 것입니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공정한 경쟁만이 알뜰한 살림살이의 지름길입니다. 생애주기비용으로 따져보면, 공정하게 건설된 국가 인프라가 가성비가 높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국가 인프라는 대부분 정부 재정으로 충당됩니다. 그래서 정부가 수요자이고, 건설회사는 공급자입니다.

공정성은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의 권리와 의무의 균형을 말합니다. 공정거래법의 근본 취지는 공급자 보호입니다. 시장 거래에서 수요자의 과도한 권리 행사를 막는 것이죠. 그러나 공정거래법에서 정부는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정부가 시장 실패의 감시자인 것은 맞지만, 인프라 사업의 특성 상 정부는 수요자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공정한 거래의 당사자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25년째 계속되고 있는 새만금 사업은 대표적인 정치적 결단의 산물입니다. 이 사업이 어떻게 진척되어 왔고, 이 부지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 지 우리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도 정치적 결단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당시 엔지니어들은 본류와 지류 중에 어느 것을 먼저 굴착해야 하는지에 의견이 달랐지만, 사업 자체에 대하여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시 정부가 밀어붙인 기간 안에 완공하려면 인력과 장비 등에 시장 왜곡이 있을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난 뒤 건설에 참여했던 엔지니어들이 무슨 이유로 단죄되었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설역사에서 정치적 결단의 원조는 경부고속도로일 겁니다. 야당의 반대가 거셌지만, 그때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옳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그런 상황에 있지 않습니다. 이미 수많은 개발 경험과 세계적 수준의 건설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덕도 신공항 사업이 정치 쟁점화하자 프랑스 엔지니어를 심판으로 모셔온 적이 있습니다. 국민들의 눈에 우리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비춰졌는지를 드러낸 겁니다. 정치권은 그 심판의 판정에도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들의 엔지니어로서의 양심은 의심받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시공의 첫 단계는 건설회사들을 입찰에 초청(Invitation to bid)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입찰 공고(Bid notice)’라 하는데, 국제입찰에서는 ‘초청’이란 용어를 씁니다. 점잖게 들리지만, 사실은 참여 여부는 전적으로 건설회사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법적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계약이 체결되면 건설회사는 계약자(contractor)위치가 됩니다. 입찰자 지위와 계약자 지위는 전혀 다릅니다. 일단 계약이 되면 계약대로 수행할 책임을 지게 됩니다. 따라서 입찰 내용에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입찰 전, 또는 계약 전에 이의를 제기하고 양측이 대등한 법적 지위에서 합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입찰에는 그런 이의 제기 절차가 시행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입찰단계부터 계약이행까지 정부가 모든 절차를 강요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정부가 주는 시간과 돈에 대하여 토 달지 말고 참여하라는 한국의 전통(?)은, 옛 일본 특유의 나눠주기 상명하복 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번 가덕도 유찰은 그런 전통에 대한 건설업체들의 무언의 거부입니다. 지금의 법이나 관행으로는 그들이 의사 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법적으로는 두 번 유찰되면 수의계약 대상 사업이 됩니다. 정부는 이런 합법적 절차로 이 사업을 강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 가덕도 신공항 개발의 타당성이 처음부터 엔지니어들의 손을 떠나 정치인들의 입으로 갔는지 국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합법화 과정을 거치는 것은 국력 낭비입니다. 그리고 훗날 이 사업이 다시 정치 쟁점화되는 날, 무슨 법에 얽히든 엔지니어들이 또 법정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미국토목학회의 ‘엔지니어 헌장’에는, 지금도 건설산업에서 부패부조리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매년5천억불(650조원)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부담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정부의 형태가 어떻든 모든 나라에서 발생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조리가 꼭 정부의 부당한 결정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엔지니어의 양심에 반하는 것은 사실일 겁니다.


대한토목학회의 윤리강령에 “기술자로서 양심과 명예를 존중한다”는 항목이 있습니다. 지식을 업으로 하되 양심에 따라 행동하자는 겁니다. 쉽지 않으니 강령에 넣었겠죠. 지식인과 지성인의 차이는 양심에 따라 행동하느냐 여부에 있습니다.


엔지니어들이 경험과 양심으로 행동하여 국민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책무입니다. 성장 지향적 정부들은 건설산업의 글로벌화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약속의 실천이 지금 해외에서 원자력발전소나 신도시개발 같은 초대형 사업들로 결실을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엔지니어들의 판단이 정치적 결단의 선행 조건이 되도록 법 절차를 강화한다면, 우리 엔지니어링사들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가 높아져 건설산업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가는 길은 더 탄탄해질 것입니다. 여기에는 금전적 지원도 필요 없고, 법만 바꿔주면 됩니다.


기능공을 지금은 숙련 기술인이라 부릅니다. 기술의 의미가 달라진 겁니다. 그래서 아예 이참에 기술자라는 명칭을 엔지니어로 바꾸자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엔지니어라 부른다고 역할이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이제까지의 ‘기술자’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자구적 노력이 자긍심으로 결실 맺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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