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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호모 컨스트럭투스, 건설인류의 공존과 번영 / 김한수 세종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름 관리자 이메일  bbanlee@kfcc.or.kr
작성일 2024-08-30 조회수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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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컨스트럭투스(Homo constructus)를 아십니까? 생소하지만 왠지 익숙하다는 느낌도 들 것 같다. 호모 뒤에 단어를 덧붙여서 인류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방법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 슬기로운(sapiens) 사람(Homo)처럼 공식적인 학명(學名)도 있고, 호모 이코노미쿠스(economicus), 경제적 사람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조어(造語)도 있다. 


여기에 착안해서 필자도 신조어를 만들어보았다. 건설(construction)의 라틴어 어원이 컨스트럭투스(constructus)이기에 ‘건설 인류’는 호모 컨스트럭투스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이 단어가 최초 창작품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ChatGPT에 물어보고 이렇게 확인받았다.

 “현재까지 ‘호모 컨스트럭투스’라는 용어는 공식적으로 인류의 한 종으로 인정되거나 사용된 사례는 없지만, 이 표현을 통해 인류의 건설적 특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에는 적합할 수 있습니다.” 


건설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행위 중 하나이다. 구석기 시대 동굴 생활에서 벗어나 신석기 시대 정착 생활로 진입하면서 인류의 짓는(건설) 행위는 시작되었으니 어림잡아도 약 12,000년 역사는 된 것이다. 건축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토목의 역사는 기원전 3,000년 전으로 추정되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수로와 댐 건설이 초기 토목공사라고 한다. 그 이후 로마군에 의해 도로, 수로, 교량 등이 건설되면서 군사 엔지니어링(military engineering)이 시작되었으며, 18세기 군사 엔지니어링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민간 엔지니어링(civil engineering)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고 현재 토목공학이라고 불리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Civil’에는 문명이라는 의미도 있으니 토목공학 보다는 문명공학이라고 명명(命名)되었으면 더 근사했을 것 같다는.


건축물이든 토목시설물이든 우리는 오랫동안 무언가를 지어온 건설 인류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무언가를 지어야 할 이유와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안심이 된다. 비록 형태와 방법은 변하고 진보될지라도 인류가 이 땅에서 멸종되지 않는 한 무언가는 계속 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건설산업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소멸할 것이라는 기우(杞憂)도 있지만 그럴 리가 없다. 건설산업은 인류와 운명 공동체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산업이다. 다만, 건설시장이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이니 두려움과 울렁증을 잘 견뎌낼 필요는 있다.


건설의 라틴어 어원인 컨스트럭투스의 뜻을 한번 짚어보자. 그 안에 건설 인류의 공존과 번영을 위한 단서가 들어있다. 컨스트럭투스라는 단어는 짓는다(structus)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 함께(con)라는 접두어가 붙었으니 ‘함께 짓는다’의 의미가 된다. 지어서(建) 베푼다(設)는 용어도 멋지지만, 함께(共) 짓는다(建)가 건설산업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더 잘 표현해주는 느낌이 든다.


‘함께’란 누구와 누구의 함께라는 의미일까? 즉, 어떤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일까? 좁게 보면 건설을 ‘하는’ 공동체(건설산업)이다. 설계·엔지니어링사, 시공사, 감리·CM사, 인력·장비공급사들이 이 범주에 속하는 건설 인류이다. 이들 간의 건강한 ‘함께’, 즉, 소통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건강한 관계가 건설산업의 공존과 번영을 위한 조건이다.


건설 인류는 건설을 하는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더 넓게 보면 건설을 ‘시키는’ 공동체(정부와 발주자)도 건설 인류에 포함된다. 지금은 이들과의 ‘함께’가 더 중요해졌다. 즉, 건설을 하는 건설 인류와 건설을 시키는 건설 인류와의 소통과 협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 두 건설 인류 간의 소통과 협력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간에 발생하는 갈등과 대립이 건설사업의 효율성과 성패, 건설산업의 생산성과 성장·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현재 건설산업에 존재하는 부실공사, 적정공사비, 갑질과 을질 등 어느 문제라도 대입해 보면 ‘함께’가 결여된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문제는 두 건설 인류간의 갈등과 대립이 더 심화되는 방향으로 건설산업 환경이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다양한 원인 중 딱 하나만 손꼽으라면 건설사업의 리스크는 계속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발전과 함께 경제적, 수요적, 규모적, 기술적 측면에서 건설사업은 더욱 복잡다단(複雜多端)해졌고, 건설사업의 리스크도 비례해서 증가해왔다. 결국 건설 인류의 진화는 리스크 증가라는 도전에 응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리스크를 대응하는 가장 ‘쉽지만’ 최악의 방법이 있기는 하다. 리스크 ‘폭탄’ 돌리기이다. 잘만 돌리면 이번에는 자기한테서 터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반복되면 건설 인류는 점점 공멸(共滅)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건설산업은 인류와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산업이라고 앞에서 언급했다. 관건은 어떤 모습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것인가이다. 역할과 양적으로는 지속가능하지만, 질적으로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면 건설산업은 ‘개살구’ 산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고 떫은 맛은 두 건설 인류 모두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관건은 컨스트럭투스, ‘함께 짓는’ 정신과 메커니즘을 회복하는 것이다. 상호 간의 소통과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소통이 출발점이다. 그냥 소통이 아니라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통(communication)이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은 나눔 또는 공유(share)이다. 자주 만나서 일방적으로 많은 얘기를 했다고 소통한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를 나누고 공유해야 진정한 소통이다. 건설사업에서 진정한 소통이란 서로 리스크에 대해서 얘기하고, 이를 공정하게 공유하는 것이다. 두 건설 인류가 리스크를 공유함으로써 ‘함께’ 하는 길을 찾는 것이 가장 호모 컨스트럭투스다운 모습이며 서로 공존하고 번영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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