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설현장에서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새로 적용된 소규모 현장의 사망사고는 되레 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색케 하고 있다.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모든 책임을 중대재해 발생 기업으로 몰아가며 엄벌을 앵무새처럼 되뇐다. 매스컴은 중대재해를 원인분석보다는 흥미 위주의 가십거리 대상으로 보도하고 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엄벌만능주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기업들은 형사처벌을 피하는 데 급급한 형국이다.
지난 정부의 엄벌만능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인 현 정부 역시 표면적으론 이것과 거리를 두는 듯 하지만 실제 기조는 바뀌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냉정하고 공정해야 할 법원까지 맹목적 엄벌만능주의로 적잖이 오염돼 있다. 정부의 성향을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서 엄벌만능주의가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를 조장하거나 편승하는 세력들이 도처에서 꽈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독일의 유명한 법률가 헤르만 폰 키르히만(Hermann von Kirchmann)이 “법 관계자는 실정법으로 말미암아 튼튼한 나무를 버리고 썩은 나무를 먹고 사는 벌레가 되고 말았다.”고 일갈했듯이, 우리 사회는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소위 ‘김용균법’)과 같은 엉터리 안전관계법이 탄생하면서 이러한 법을 돈벌이 등 사적 이익을 채우는 수단으로 여기는 자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이 결여된 ‘엄벌법’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재해예방이라는 목적의식은 사라지고 형식적인 활동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산업안전 행정인력이 비대할 정도 늘어났음에도 중대재해가 실질적으로 줄지 않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안전의 역사는 처벌 강화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구조적인 문제는 방치한 채 거친 규제 남발과 엄벌로 치달아 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예방시스템 개선은 도외시하고 처벌 포퓰리즘에 의존했다. 현 정부 역시 엄벌 타령하거나 엄벌주의에 기대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 정부 초기에는 엄벌 일변도 정책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언제부터인가는 엄벌주의에 안주하며 ‘지금 이대로가 좋아’를 외치고 있다.
엄벌만능주의를 지탱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 실패 호도와 대중의 심리적 분풀이다. 위정자는 전자를 위해 후자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재해예방에 진정성이 없는 정부일수록 자신들의 무능력과 태만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피하고 사고의 모든 책임을 개별기업, 특히 경영책임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수단으로 엄벌정책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이것의 심각한 문제는 이로 인해 본질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할 기회가 차단되거나 묻힌다는 점이다.
확실하게 처벌할수록 처벌 효과가 커진다는 건 대체로 지지되고 있지만, 강하게 처벌한다고 하여 처벌 효과가 커지는 것은 아니라는 게 형법학계의 정설이다. ‘엄벌’보다는 ‘필벌’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1%의 의무위반을 100으로 처벌하는 것보다 100%의 의무위반을 1로 처벌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위정자들은 예방시스템 개혁이 많은 노력과 긴 시간이 드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 대신에 사고 발생 기업에 엄벌을 강조하는 건 별다른 비용이 들지도 않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도 쉬우며 자신들의 잘못을 가릴 수 있어 위정자들에겐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엄벌이 약방의 감초처럼 사용되는 이유이다.
정부는 엄벌을 자신들의 조직과 권한을 강화·유지하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며 여전히 자의적 수사를 일삼고 있다. 수사기관의 권한남용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안전에 대한 냉소를 자아내고 재해예방에 찬물을 끼얹는다. 이런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데도 정책을 전환하거나 자성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조차 의무를 누가 어떻게 어디까지를 이행해야 할지 판단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은 외면하고 있다. 엉성한 법정책이 중대재해의 구조적 요인 중 하나라는 점에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최근엔 법원도 엄벌만능주의 풍조에 가담하는 분위기다. 범죄 성립요건인 행위의 고의성, 위반과 중대재해 간의 인과관계, 예견가능성에 대한 논증을 생략하거나 비약하기 일쑤다.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는지 제대로 심리하지 않은 채 유죄판결을 내리고 있다. 논란 많은 법은 그 폐해를 다소라도 줄이기 위해 가능한 한 법 개념과 적용을 제한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법관은 실정법의 노예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고 악법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상당수 판결은 이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죄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거기에 억지논리를 끼워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만큼 유죄 판단에 대한 논거가 빈약하다. 심지어는 ‘외주(도급)는 나쁘다’는 이념적 편향에 사로잡힌 판결도 적지 않다.
엄벌만능주의로 인해 안전이 뒤틀려지고 안전에 대한 형식주의가 만연돼 있다. 안전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이 악화되어 갈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야당 탓하며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국민들을 원군 삼아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대대적 정비에 나서야 한다. 당장은 무분별하고 자의적인 법집행부터 중지해야 한다. 고비용 저효과 안전을 부추기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방치한다면 무책임을 넘어 무능하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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