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개월 남짓 우리나라는 정치·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어수선한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좋은 세상이 열리길 소망한다. 무엇보다도 나락으로 떨어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하루빨리 되찾고 갈라진 국민정서의 통합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정책수립이 시급하다. 새 정부는 “진짜 대한민국”의 실현을 위하여 회복, 성장, 행복의 3대 비전 아래 15개의 정책과제를 주요공약으로 제시하였다. 정책과제 중에는 건설산업과 연관된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건설경기의 침체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통계적으로 보더라도 건설분야의 기업경기실사지수(CBSI)가 여전히 낮고 건설근로자의 취업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치솟는 공사비를 감당하지 못해 가동을 멈춘 건설현장과 도산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로 인해 프로젝트 금융에 제동이 걸리면서 계획했던 분양사업이 중단되고 일부 신규사업은 수도권으로 한정되어 건설경기의 선순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 정부의 건설정책은 그 방향과 내용에 따라 건설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새 정부의 건설산업 관련 공약을 살펴보면 다른 산업에 비해 단기적인 경기회복을 강조할 뿐 중장기적인 산업진흥대책은 미흡한 면이 있다. 국가경영 프로젝트는 한정된 자원 아래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고 리스크가 내재된 건설프로젝트와 매우 유사하다. 건설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프리콘 업무를 수행하듯이 새 정부 출범단계의 정책결정과 실행계획은 국가경영의 필수요소이다. 국가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건설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미래지향적인 건설정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새 정부의 건설정책에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제안하고자 한다.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중장기적인 주거정책 수립
새 정부에서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5극(초광역권) 3특(특별지치도) 구현 공약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을 고려한 주거정책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서울의 집값이 폭등하고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주택가격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바뀔 때 마다 변화되는 주거정책으로 주택가격은 큰 변동을 겪어왔다. 수도권의 부족한 주거문제의 해결을 위해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인구집중을 가속시킬 수 있으므로 정책결정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주거안정은 국민의 행복한 삶과 직결되어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다.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과 양질의 공공주택공급을 위한 주거정책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관성 있게 운영되어야 한다.
새 정부의 주거정책은 중산층과 서민, 청년세대를 대상으로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주거안정 대책으로 토지임대부 건물분양 방식이나 유휴 국공유지를 활용하여 공공주택 단지를 공급하고 장기임대주택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이 있다. 청년 세대에게는 직주근접 지역에 양질의 저렴한 주택(Affordable Housing)을 공급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특히, 토지가격이 높은 도심지에서는 유휴부지를 활용한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장기거주후 분양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안전사회의 실현을 위한 건설재해 예방체계 확립
새 정부에서 표방하는 안전사회를 실현하는데는 건설산업의 역할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발생하는 건설안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요구된다. 지난 몇 년 동안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지만 건설안전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후처벌 위주의 수동적인 정책 보다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능동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올해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점차 잊혀져가고 있지만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는 평생 슬픔으로 남아있다. 지난 6월에 건설분야 유관단체들이 주관하여 추모 학술행사를 개최하고 안전문화의 정착과 안전사회의 실현 방안에 대해 토론하였다.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후대응(Response)과 복구(Recovery)에 치중하는 현행 재난관리체계를 예방(Mitigation)과 대비(Preparation)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규제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참여주체간 안전준수협정을 통해 자발적으로 재해예방에 동참하는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의 전략적 동반자 프로그램(Stratigic Partnership Program)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국민생명을 보호하는 안전사회를 실현하려면 재해의 근원을 차단할 수 있도록 건설재해 예방체계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건설산업의 해외진출 패러다임 전환과 정부지원 확대
우리나라가 해외건설시장에 진출한 지 어느덧 60년이 되었다. 1965년 현대건설이 태국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수주한 이래 165개국에서 1만 6천여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누적 수주 1조 달러를 달성하였다. 해외건설에 참여하여 우리 건설산업의 세계적인 위상을 높여준 수많은 건설인들의 고귀한 희생과 위대한 업적에 감사드린다. 당면한 건설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외시장 진출이 필수적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건설기업은 주로 도급공사 중심의 해외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수주실적을 쌓아왔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건설경쟁력이 중국과 유럽에 뒤쳐지면서 해외건설 수주가 감소되는 추세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설계 및 엔지니어링, 프로젝트 관리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해외시장 진출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K-건설의 강점인 스마트 도시건설과 민관협력 투자개발 사업, 모듈러 기반 OSC(Offsite Construction) 사업 등에 대중소 건설기업이 동반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요구된다.
건설산업의 제도개선과 혁신을 주관하는 성설기구 설립
그동안 우리나라 관산학연에서는 건설산업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로는 2008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민간 주도로 활동한 건설산업선진화위원회와, 2018년 정부와 민간 합동으로 구성된 5년간 활동한 건설산업혁신위원회가 있다. 지금도 건설산업비전포럼과 같은 오피니언 리더그룹에서는 정기적인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꾸준히 정책제안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속적인 혁신노력에도 불구하고 건설정책에 반영된 내용은 미미하다. 그 주요 이유는 거버넌스의 부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건설산업의 미래 방향을 정하고 혁신을 주관하는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국내 건설관련 법령은 정부의 여러 부처에 산재되어 관리하기 어렵고, 건설행정과 계약제도는 글로벌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건설프로젝트 수행과정에서 발주자의 책임이 대부분 시공자에게 전가되는 불공정한 계약제도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건설산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건설법령과 계약제도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정비하고 발주자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건설산업의 불합리한 관행을 타파하고 선진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CE(Constructing Excellence)와 같이 건설제도의 개선과 발주자 혁신을 담당할 상설기구의 설립이 시급하다.
인류역사와 함께 성장한 건설산업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정주환경을 제공하면서 위대한 문화유산을 창조해왔다. 특히 건설산업은 국가경제를 선도하고 고용창출에 기여하는 주요 기간산업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건설산업이 최근 경기침체로 인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건설근로자의 고령화와 외국인 근로자의 증가는 건설현장의 안전과 시설물의 품질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설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건설기업의 생산성 향상도 중요하지만 주택경기 선순환을 위한 정부의 주거정책과 해외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진흥정책이 잘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건설산업의 국가목표를 정하고 제도개선과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를 주관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우리 건설산업이 새 정부의 국토균형발전과 안전사회 실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인 건설정책이 수립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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