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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랜 연인의 페르시아, K-건설의 이란 재진입을 위한 냉철한 시선 / 장현승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이름 관리자 이메일  bbanlee@kfcc.or.kr
작성일 2026-06-01 조회수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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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동 지역을 둘러싼 긴장의 파고가 심상치 않다. 그간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 이른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을 앞세운 대리전 양상으로 이어지던 분쟁은 이제 이스라엘과 미국의 직접적인 이란 본토 공습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중동 전체가 다시금 예측 불허의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분위기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며 필자는 자연스럽게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중동에서 가장 서구화되고 개방적이었던 국가가 단숨에 이슬람 원리주의 체제로 방향을 틀었던 사건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의 본질이자 이란이라는 국가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혁명 이후의 이란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고도 복합적인 국가 체제로 남아 있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존재함에도, 그 위에서 종교적 최고지도자가 국가 운영의 최종 권위를 행사하는 신정일치(神政一致)의 정치구조는 서구적 민주주의 관점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특히 ‘이슬람 혁명 수호’라는 명분 아래 탄생한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단순한 군사 조직을 넘어 이란 내 주요 기간산업과 경제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 권력 집단으로 성장해 왔다. 더욱이 이들은 중동 한복판에 위치하면서도 아랍 민족이 아닌 페르시아인의 자긍심을 공유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지켜온 시아파의 맹주라는 점에서 주변 아랍국들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형성한다. 이 독특한 정체성은 오늘날의 이란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토록 이질적인 체제와 이념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와 이란 사이에는 오랜 시간 묘한 유대감이 이어져 왔다. 멀게는 신라시대 처용 설화 속에 등장하는 서역인이 페르시아 상인이었다는 학계의 고증부터, 가깝게는 이란 현지에서 80%가 넘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주몽’과 ‘대장금’ 열풍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접점은 생각보다 깊다. 이는 단순한 한류 소비를 넘어, ‘가족 중심의 가치’와 ‘어른에 대한 예우’라는 양국 특유의 정서적 공감대가 일정 부분 맞닿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란 사회를 접해본 사람들 가운데는 한국과 의외로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한다.

 

이러한 정서적 유대는 실제 산업 현장에서도 ‘K-건설’의 성과로 이어졌다. 과거 이란은 우리 건설기업들에게 단순한 해외 시장 이상의 의미가 있는 국가였다. 실제로 우리 해외 건설이 도약기에 접어들던 2002년, 전체 해외 수주액 61.3억 달러 가운데 이란 한 국가에서만 18.7억 달러를 기록하며 국가별 수주 순위 1위를 차지했다. 해외건설협회 통계 기준으로도 이는 당시 이란 시장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치다. 당시 국내 건설업계에서 이란은 단순히 규모가 큰 시장이 아니라, 중동 진출 전략의 핵심 거점에 가까웠다.

 

비록 지금은 이란과 미국 간 관계가 다시 경색되며 우리 기업들의 관심 역시 다소 주춤한 모습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지난 2016년 오바마 행정부 주도로 핵 합의(JCPOA)가 도출되고 경제제재가 완화되었을 당시, 이란은 노후화된 정유시설과 사회기반시설 교체를 위해 연간 500억 달러 이상의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선언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이에 발맞춰 우리 정부 역시 양국 정상회담 등을 통해 철도·공항·수자원 등 사회기반시설(116.2억 달러), 석유·가스 재건(178억 달러), 발전소(58억 달러), 의료 분야(18.5억 달러)를 망라하는 총 30개 프로젝트에서 약 371억 달러(한화 약 42조 원) 규모의 MOU를 체결하며 ‘제2의 중동 붐’에 대한 기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우리 대형 건설기업들 역시 이란 시장의 재개방 가능성에 대비해 오랜 기간 정밀한 모니터링을 이어왔으며, 최근까지도 현지 지사를 유지한 채 꾸준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건설업계가 이란을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이력과 우리 기업들의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부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분쟁 종료 이후의 ‘이란 재건 시장’ 낙관론에 대해 필자는 다소 우려 섞인 시선을 거두기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과거의 향수에 젖기보다, 어느 때보다 차가운 이성과 냉철한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직면해야 할 현실은 국제사회의 장기 제재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비워둔 자리를 이미 중국 건설기업들이 상당 부분 선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설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산업이 아니라 현지에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하는 ‘밀착형 산업’에 가깝다.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시공 경험과 성과를 보유했더라도, 수십 년에 걸친 사업 공백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현지 공급망의 붕괴, 발주처와의 핵심 네트워크 단절, 그리고 변화한 이란 경제체제에 대한 정보 공백으로 이어진다. 특히 혁명수비대가 경제 전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현재의 구조 속에서, 중국 기업들이 장기간 구축해 온 현지 밀착형 수주 전략은 우리에게 상당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앞으로는 미국과 이란 정부 간 관계 변화 가능성과 함께 경제제재 해제 이후의 시나리오 역시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견고한 신정 체제가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과거 ‘아랍의 봄’과 같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정치 질서가 등장할 것인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다만 분명한 것은, 비록 지금은 시장의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란이 가진 잠재력 자체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원유·천연가스 매장량,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핵심 제조 거점으로서의 입지, 그리고 거대한 인구 기반의 내수시장은 이란을 여전히 전략적 가치가 높은 시장으로 남게 만든다. 언젠가 다시 시장의 문이 열리는 순간, 이란은 우리가 반드시 다시 주목하게 될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란 시장은 우리에게 거대한 기회의 땅인 동시에 가장 풀기 어려운 복합 방정식과도 같은 존재다. 단순히 ‘분쟁 이후 재건 시장’이라는 장밋빛 전망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변화한 지정학적 질서와 이란 내부의 특수한 권력 구조를 함께 읽어내는 시선이 필요하다. 당장의 진입 장벽이 높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기보다는,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라는 말처럼 정부와 기업, 관계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미래 진출 시나리오를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척박한 중동의 모래바람 속에서도 세계를 무대로 성장해 온 K-건설의 저력이 다시금 페르시아에서 꽃피울 수 있을지, 이제는 뜨거운 기대보다 냉정한 전략과 긴 호흡의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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