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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세의 종말?-수익률의 시대 / 권주안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부 겸임교수
이름 관리자 이메일  bbanlee@kfcc.or.kr
작성일 2026-07-01 조회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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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집값 상승도 아니고, 서울과 지방의 격차 확대도 아니다. 진짜 변화는 전세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세를 단순한 임대차 계약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 보면 전세는 단순한 주거 방식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독특한 자산 형성 시스템이었다.


과거 한국의 무주택 가구는 전세를 통해 월세 부담 없이 거주할 수 있었다. 전세보증금이라는 목돈은 필요했지만, 매달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소득의 상당 부분을 저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축적된 자금은 다시 주택 구입을 위한 종잣돈으로 활용되었다. 다시 말해 전세는 단순히 집을 빌리는 방식이 아니라 무주택자가 자산을 형성하며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사회적 사다리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 전세 제도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주요 지역에서는 전세 물량이 감소하고 월세 물량이 증가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는 단순한 시장의 우연이 아니다. 한국 주택시장의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그 배경에는 저성장과 고금리라는 거시경제 환경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집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임대인들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인구 증가세는 둔화되었고, 경제성장률도 과거보다 낮아졌다. 전국의 모든 부동산이 동시에 상승하는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다.


여기에 전세사기와 역전세 문제가 발생하면서 임대인들이 느끼는 위험도 크게 증가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보증보험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전세는 더 이상 안전한 임대 방식으로 인식되지 않게 되었다. 반면 월세는 다르다. 월세는 매달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한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거액의 전세보증금을 안고 불안해하는 것보다 월세를 받으며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이 과정에서 주택은 거주 공간이라는 성격을 넘어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과거 투자자들은 집값 상승을 통해 수익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월세라는 현금흐름 자체가 중요한 투자 수익이 되고 있다. 마치 투자자가 배당주를 보유하여 정기적으로 배당금을 받듯이, 주택 소유자는 월세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한다. 서울의 핵심 지역 아파트가 여전히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우량 자산으로서 주택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임차인들에게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전세가 제공하던 가장 큰 혜택은 주거비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자산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월세가 일반화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매달 150만 원의 월세를 지불하는 가구는 1년에 1,800만 원을 소비하게 된다. 10년이면 단순 계산으로도 1억 8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 주거비로 사라진다. 그 돈은 더 이상 저축이나 투자에 사용될 수 없다.


결국 월세화는 자산 형성 속도를 크게 늦춘다. 청년층과 신혼부부는 소득의 상당 부분을 주거비로 지출하게 되고, 종잣돈을 모으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해진다. 자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고, 계층 이동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주거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과거의 양극화가 어느 지역의 집값이 더 많이 올랐는가의 문제였다면, 앞으로의 양극화는 누가 지속적인 임대수익을 받는가의 문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주택을 보유한 계층은 월세를 통해 꾸준한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그 수익을 다시 자산시장에 투자한다. 반면 임차인 계층은 월세 부담으로 인해 저축과 투자 여력이 줄어든다. 결국 자산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은 자산을 축적하고, 자산이 없는 사람은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워지는 구조가 형성된다.


따라서 전세의 종말은 단순히 임대차 제도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중산층 형성 메커니즘의 붕괴를 의미한다. 물론 시장의 금융화와 수익률 중심의 변화는 거시경제적 흐름 속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부와 사회가 이를 단순한 시장 원리로만 방치한다면 주거비 부담 증가, 소비 위축, 출산율 저하, 계층 이동 단절이라는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주택정책은 집값 자체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전세라는 사다리가 사라진 이후 무주택자들이 어떻게 자산을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 사회는 전세의 종말과 함께 계층 이동의 사다리마저 잃게 될지 모른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진 사회는 역동성을 잃게 된다.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중산층은 점차 축소된다. 결국 전세의 종말은 단순한 주택시장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경제적 역동성의 한 단면이 약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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